수필

하려다 울어버린 숙제

왕꼬장 2008. 9. 12. 20:32

                                                   하려다 울어버린 숙제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60년대는 우리 사회에 아직 6·25전쟁과 4·19 혁명, 5·16 구데타 등 격동의 여진이 남은 가난하고 팍팍한 시절이었다.

그 무렵 학급은 80명 가까운 콩나물 교실이었고, 2부제 수업은 다반사였다. 그렇지만 학교의 운영은 요즘과 다를 바 없어서 선생님들은 숙제를 내주었고 아이들은 집에 와서 그 숙제를 해야했다. 못 해 가는 아이들은 벌을 받아야 했고, 그걸 모면하려고 전과가 있는 친구 집에 숙제를 싸들고 가는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제법 특이한 숙제를 내주셨다. 소방서나 경찰서 등등을 방문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 곳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조사해오라는 거였다. 사회 과목의 <우리 동네의 공공기관> 뭐 이런 단원을 배울 때였으리라. 요즘이야 인터넷이 발달해 있으니 일도 아닌 숙제지만 그 당시에는 직접 가서 체험하고 조사해 와야만 했다.  

내가 맡은 곳은 동사무소였다. 동회라고 줄여서 부른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동네에 사는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나는 동회를 찾아갔다. 모두 동회를 숙제로 맡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태극기가 걸려 있고 제법 번듯한 건물인 동회 앞에서 우리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야, 네가 먼저 들어가."
"네가 들어가."

서로 머뭇거리다 가장 용감하다는 기호가 앞장을 섰다. 쭈뼛거리던 우리들에게 동사무소에 앉아 있던 근엄한 아저씨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저 학교에서……동사무소에 대해서……."
"이놈들, 장난치지 말고 썩 꺼져! 여기가 무슨 놀이터인 줄 알아!"

아저씨는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고는 우리를 거칠게 쫓아냈다. 아마도 우리가 뭐 말썽이나 피우러 온 줄 안 것이리라.

"으아앙!"

밖으로 밀려난 우리는 무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 모두 울어버렸다. 

다음날 학교에서 우리가 동회에 찾아갔다가 쫓겨났다는 말을 들은 선생님은 더 이상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직원이 친절하게 우리들을 상대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어른들과 관공서, 더 나아가 이 사회를 보는 시선도 훨씬 좋았을 텐데. 지금도 관공서에 가려면 지레 주눅이 드는 것은 어쩌면 그 사건 때문이 아닐까싶다.

작가가 되어 강연회 등으로 어린이들을 자주 만나는 지금의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그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무심한 나의 태도가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국화 앞에서 한 커트 찍었다.

5학년 무렵인 듯...

나에게도 저렇게 고운 시절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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