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강원래씨에게

왕꼬장 2008. 9. 27. 21:01

 

어제 강원래씨와 반갑게 만났다.

평소에 형님이라며 날 따르지만 사무적인(?) 나는 그런 그에게 말을 놓지 않는다.

KBS에서 생방송 출연하는데 내가 1부 그가 2부여서 잠시 교차하면서 사진 한장 찍었다.

자주 보지만 함께 사진 찍은 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와 나는 9살 차이나는데 외모는 한 20살 차이나는 것 같다.ㅠㅠ!

아무튼 나의 대머리가 웬수다.

 

과거 그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썼던 글이 불현듯 생각났다.

자료 폴더를 뒤지니 있었다.(컨텐츠의 철저한 보관 관리는 프로작가의 생명이다.^^)

 

지금도 유효해서 한번 올려본다.

 

 

                                                                 강원래씨에게
                                                            
얼마 전 텔레비젼에서 강원래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처지이지만 이렇게 펜을 든 이유는 단 하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이제 그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강원래씨의 다음 말이 나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이겨내야 할 상황이 있잖아요. 그런데 준엽이는 갑자기 닥친 일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거예요. 저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개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되게 미안해요."

용감하고 패기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사고 뒤에 할 일이 많아졌다는 표현이야말로 그 방송을 본 나를 비롯한 시청자들의 허를 찌르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방송을 지켜 보면서 우리 가족은 모두 강원래씨의 회복을 위해 뜨거운 박수를 쳤습니다. 그건 아마 일급장애인인 나를 가장으로 둔 우리 가족의 감회가 남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클론 시절의 강원래씨야말로 건장한 청년 모습의 전형이었습니다. 난이도 높은 빠른 춤, 근육질의 팔과 다리, 뛰고 달릴 수 있는 건강한 몸, 그리고 엄청난 성공…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과 결별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왜 하필 저처럼 아름다운 청년을 신은 교통사로를 통해 무참히 짓밟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저는 사고 소식을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쩌면 그 눈물은 우리 400만 장애인의 고통을 알기에 뿌리는 눈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아끼지 않습니다. 속세를 버리고 고행의 길로 들어선 종교인,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 대학생이 된 수험샌, 청춘을 불사르고 와신상담 끝에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 그 분야의 선배들은 이들을 반갑게 맞아들이며 동료로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장애인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불의의 사고를 입어 장애인이 된 사람을 동료가 되었다고 환영해야 하는 건 분명 아닙니다. 왜 하필이면 그 많은 것 가운데 장애인이 되었냐고 함께 붙잡고 한탄과 통곡을 해야 하는 게 차라리 맞을 겁니다.

비장애인들은 강원래군이 겪을 앞으로의 고통을 잘 모를 것입니다. 그건 소아마비로 인해 1급 지체장애인인 나로서도 상상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이니까요. 척추를 통해 뇌에 연결된 사지의 모든 신경은 손상된 그곳 아래의 부위는 전혀 쓸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반신은 감각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수퍼맨으로 유명한 미국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떠오릅니다.


나는 여기에서 강원래군의 고통이 이중의 것임을 우려합니다. 그는 신체적인 장애와 동시에 엊그제까지 건강한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뛰어났던 청년이 졸지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장애인이되어버렸다는 낭패감일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강원래씨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몫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강원래군의 사고는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도 얘기한 안전 불감증으로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장애인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시내의 모 병원은 병상 전체를 각종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린 산업재해 환자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절단기의 안전장치가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워 꺼놓는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교통 법규를 준수하지 않는 운전자들의 무감각도 중요한 요인의 하나지요. 노란 신호지만 에이 지나가자라는 심정으로 지금 이 순간 가속기를 밟는 우리들은 모두 잠재적인 교통사고의 원인제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술 몇잔 먹고 운전하면 어떠냐는 생각도 크게 보면 죄없는 어느 누구를 장애인으로 만들거나죽일 수도 있는 행동입니다. 술 좀 먹은 게 무슨 죄냐는 모 인기 가수의 팬들의 저돌적인 항의에서 나는 공포를 느낍니다. 그건 곧 이 사회가 앞으로도 제1 제2의 강원래군을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미국을 다녀 온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거기가 장애인의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의 투쟁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전 세계의 경찰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이 수많은 외국의 전쟁터에서 돌아온 상이군인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편의시설은 모두 그런 전쟁 영웅을 위한 것들임도 모르는 처사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전쟁 영웅 아닌 안전 불감증과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사회의 규범을 편법으로 무시하는 자들로 인해 길거리에 장애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겪는 불편은 개인적인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니들이 원래 재수가 없어서 그래. 니들 팔자야.

 

과연 그런가요.

이제 정말 더 이상의 중도장애인이 양산되는 건 보고싶지 않습니다. 그들의 절망과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강원래씨의 사고도 불법 유턴하던 승용차와의 총돌 사고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꼭 다시 일어나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겠다는 강원래씨의 의지를 보면서 감히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창문을 열어준다고.

 

이제 강원래씨에게는 인생의 또 다른 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장애인을 존경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장애로 인해 인생의 원치 않는 길을 걷게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은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의 모습 하나하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장애의 고통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사회,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로 만드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 될 지도 모릅니다. 장애인이 되어 눈뜬 세상 거기에도 인간의 삶은 있습니다.

 

강원래씨의 앞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 말고도 엄청나게 할일이 많이 열립니다. 부디 용기와 의지 꺾지 마십시오. 

 

나중에 병원에서 퇴원해서 생활을 시작하면 한번 만납시다. 장애를 가진 동지로서.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후후 오래 전에 쓴 글인데 지금 읽고 보니 말 그대로 되었다.

우리는 함께 뮤지컬 만들 궁리를 하고, 방송도 하고, 가끔은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친한(?) 사이가 되었으니까...

 

장애인계의 양대 아이콘인 희아와 강원래.

 

이 두 사람이 모두 나와 친하다는 게 기쁘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

장애인이 편견과 차별로부터 해방되는 날을 함께 앞당길 동지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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