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쇳덩어리를 애마로

왕꼬장 2008. 9. 2. 01:52

                                                         쇳덩어리를 애마(愛馬)로
                                                                                                                           고 정 욱

 

무료한 시간에 오래 된 서부영화를 보다보면 말 타고 다니는 카우보이들을 만난다. 넓은 미국 땅에서 그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건 말이라는 빠른 이동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당시에 말 도둑질은 아주 큰 죄였고, 잡히면 바로 범인을 교수형에 처했다. 그깟 말 한 마리가 사람 목숨보다 중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넓디넓은 미국 어느 사막에서 말이 없어져 꼼짝 못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말은 자동차로 대체되었다. 자동차는 빠르고 아늑하며 많은 사람을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옮겨준다. 그야말로 현대인의 삶을 영위하는 기본요소가 된 것이다.

 

과거 우리의 경우도 자동차는 귀하디 귀한 물건이고 재산목록 1호였던 적이 있다. 매일 쓸고 닦으며 애지중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소중함은 이동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희귀성과 높은 가격 때문이었다. 물론 거기엔 사회적 신분 과시의 의미도 없지는 않았다.
요즘도 우리 삶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비싼 내구성 소비재이기도 하지만 재산가치라기보다는 바쁜 현대사회의 요긴한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은 이야기한다. 미래의 세상은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으로 더 바쁠 것이라고.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일들로……. 정말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고, 각종 가전제품이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덜어주고 있는데도 분초를 쪼개며 살 정도로 여전히 바쁘다. 남는 시간은 또 어딘가에 쓰기 때문이다. 그런 바쁜 생활을 기본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자동차이다. 수없이 많은 자동차들은 우리의 발이 되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시켜준다. 미국은 그런 자동차 문화의 상징인 나라다. 거미줄처럼 얽힌 고속도로를 빼곡이 채워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면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여담이지만 미국의 거리에서 한국 자동차들을 발견하는 건 이미 일도 아니다. 어떨 때는 신호대기에 서 있는 자동차들 가운데 서너 대가 한국차인 경우도 있다. 우리가 미국의 원조를 받고 그들의 도움으로 연명하던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나라에서 우리의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으니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게다가 한국 자동차는 10년 10만 마일 보증 수리를 내걸고 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얘기 아닌가. 자동차의 왕국 곳곳을 달리는 우리의 자동차야말로 근대화의 길을 걸어온 우리 민족 노력의 결정체여서 눈시울이 뜨겁다.

그런 미국인들의 자동차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아주 지극하다. 웬만한 고장은 손수 고치기도 하고, 엔진오일 정도는 기본으로 갈 수 있게 도구나 장비가 차고에 즐비하다. 항상 자신의 자동차를 점검하며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삼박자를 고르게 갖추었다.

그래서일까. 미국 거리에 나서서 보면 오래된 앤틱카를 많이 만난다. 영화에서만 보던 차들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질주하는 걸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오래된 차를 소중히 여겨 타고 다니는 차 주인의 정성과 애정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런 차를 보기면 하면 일반인들도 어김없이 그 차의 이름과 연식을 줄줄이 꿴다. 특별히 자동차 전문가여서가 아니다. 자동차에 대해 그만치 관심이 많고, 아끼고 사랑하는 문화가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웃에 30년 되어 보이는 오래된 차가 있기에 주인의 허락을 받고 타 볼 기회가 있었다. 과거 우리 차 포니가 그랬듯 모든 인테리어 조작 레버는 다 수동이었다. 그것도 전자식이 아닌 기계식. 문은 크랭크를 돌려야 열리고, 좌석엔 헤드레스트도 없었다.

하지만 그 차에 오르는 순간 나는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런 차를 타고 다니며 쌓았던 젊은 날의 추억들이 일순간에 되살아났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오래된 차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윤이 번쩍번쩍 났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물건이 뿜어내는 기품이 느껴졌다. 왜 오래된 차를 소중히 여기며 타고 다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의 경우 자동차는 어떤 존재인가. 고유가 시대를 맞아 점점 애물단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싫증이 쉽게 나는 유행의 대상으로 여겨 주택가 으슥한 곳에 가면 아직도 쓸만한 자동차들이 마구 버려져 있는 걸 가끔 보게 된다. 그로 인한 자원의 낭비와 환경오염이 적잖이 우려된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앤틱카로 손봐 충분히 타고 다닐 차들이다.

자동차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바로 나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동차에 사랑을 불어넣고 소중히 관리하며 오래 타는 것, 거기에 우리 자동차 문화의 발전도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요즘 자동차를 오래 타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재화의 낭비를 막고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동시에 자동차 문화의 전통을 새롭게 심어나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나 역시 지금 7년째 타는 자동차를 앞으로도 한 5년은 더 탈 생각이다. 물론 그러려면 그에 상응하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리라. 바퀴달린 쇳덩어리가 애마(愛馬)가 되는데 어찌 수고가 들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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