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자들의 후안무치

왕꼬장 2008. 9. 24. 10:57

                             강자들의 후안무치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로 나는 휠체어 없이는 이동을 할 수 없는 1급 장애인이 되었다. 다행히 자동차를 운전할 정도는 되어서 사회 생활에는 크게 지장이 없지만 자동차에서 내려 휠체어로 옮겨 앉는 순간부터 나는 교통약자인 보행자, 그보다 더한 장애인이 되어야만 한다.

 

인근 우체국에 우편물을 부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월말이어서인지 그날 따라 손님들이 부쩍 붐비는 창구에서 어렵사리 용무를 마치고 나왔다. 그런데 현관 옆으로 나 있는 장애인용 경사로 입구를 자동차 한 대가 불법으로 주차해 막은 것이 아닌가. 분명히 아까 들어올 때는 비어 있던 공간이었는데 경사로만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나는 다시 우체국 안으로 들어가 손님 가운데 길을 막은 차 주인을 찾아냈다.

 

"에이, 멀쩡한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장애인들까지 나돌아다녀. 집에나 있지."

 

내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 그 몰상식한 운전자가 자동차를 이동시키고서야 나는 비로소 경사로를 내려올 수 있었다.

 

시내를 다니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데 또한 곤혹스러운 것이 인도 위에 떡 하니 올라와 주차한 자동차들의 뻔뻔함이다. '차는 차도로, 사람은 인도로'라는 원칙이 무색할 지경인데 그나마 비장애인들은 한 두 뼘 남짓한 틈으로 지나다닐 수 있지만 휠체어를 탄 나는 자동차에 막혀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만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남의 권리는 얼마든지 유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런 운전자들의 행태를 만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동차가 많은 곳에서 이동할 때면 나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다. 휠체어의 높이가 낮기에 운전석에 앉은 운전자가 후진을 하거나 회전을 할 경우 나같은 장애인들이 시야에 잘 안 들어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가는데도 못 보고 후진으로 들이미는 차를 황급히 트렁크를 두들겨 세운 적도 있었다. 위험천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의사표시를 제때 못하고 판단력이 흐린 어린이들이나 중증 장애인들이 왜 교통사고를 자주 당하는지 알 수 있다.

 

한 사회의 선진성은 보는 사람이 없어도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로 판단할 수 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것을 가장 극명히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장애인용 주차장이다.

 

장애인용 주차공간은 분명히 법적으로 정한 장애인만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장소이다. 비장애인에게 그곳은 아예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으로도 여겨지면 안 되는 곳이다. 늘 비워져 있는 장애인용 주차공간은 언제 올지 모르는 교통 약자에 대한 사회의 배려다. 그것은 언제고 자신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발로이기도 하고, 역설적으로는 그 공간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건강함에 감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일반 주차공간이 부족하면 잠시 대고 갔다 온다는 생각, 나 한 대쯤이야 어떠랴 하는 안이함으로 규칙을 어기고 만다. 너무도 쉽게 약자의 권리를 침해해버리고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용 주차장은 비장애인들이 주차하지 못하게 막아두거나 별도로 관리인이 있는 걸 보게 된다. 자발적이어야 할 공간이 타율적인 규제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혹자는 그런 행위를 적극 단속해야 한다지만 단속은 자발적인 준수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임을 안다면 아직도 우리의 의식수준이 낮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벌금이 아무리 무거워도 자발적인 선진의식만 못한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용 주차장의 규격도 법에서 정한 것을 태반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일반 주차공간에 휠체어 탄 장애인 마크만 그려 넣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장애인용 공간은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은 문을 활짝 열어야 차에 타고 내릴 수 있는데 겨우 2-30센티미터의 공간만 확보할 수 있는 좁은 주차공간은 아예 나 같은 교통약자는 그곳에 오지 말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모든 현상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통정책이나 자동차 문화 전반을 교통약자의 입장에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묵자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상대방을 사랑하면 강자는 약자를 억누르지 않는다. 부자(富者)는 빈자(貧者)를 짓밟지 않는다. 귀인은 천인을 압박하지 않는다. 지자(智者)는 우자(愚者)를 속이지 않는다. 이렇듯 천하가 강탈과 원한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사랑할 일이다.

 

 

자동차 문화를 향유하는 강자들이 자신의 행복과 여유를 위해 약자를 짓누르지 않으려면 법이나 규제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해야 한다. 약자를 짓밟고 얻는 나의 편리함, 그것이 진정 강자인 자동차 운전자들이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탄 나 같은 사람도 보호받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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