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수근에게서 배우자

왕꼬장 2009. 5. 2. 07:56

                               박수근에게서 배우자

 

 

 
얼마 전 아는 후배에게서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실업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이혼을 하고 가정이 깨졌다는 겁니다. 경제난으로 인한 궁핍이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서 가정을 파괴하며 많은 사람들을 힘들고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과연 이런 끝 모를 불황과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가정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을 방어할 전범으로 삼을 만한 사람은 없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화가 박수근을 우리가 지금 배워야할 사표로 삼고 싶습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화가 박수근은 일찍이 화가의 꿈을 가졌습니다. 최근에 자신의 그림이 최고가 경매의 기록을 세우고 있는 그이지만 살아서는 한번도 그러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키워냈으며 오늘날 최고의 화가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분명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장 먼저 그의 아내인 김여사의 올곧은 마음을 듭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화가 남편과 사는 김여사는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부잣집 딸이었던 그녀가 박수근과 결혼한 이유는 가난하지만 깨끗한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훤칠한 대장부인 그를 보고 유혹의 손길도 많았지만 박수근은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마음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그들 부부는 어떤 유혹도 흔들 수 없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부부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또 드는 중요한 것은 박수근이 가진 배려의 마음입니다. 돈은 잘 못 벌지만 고생하는 아내의 고통을 박수근은 이해했고, 도우려 애를 썼습니다. 가사(家事)에 박수근이 손을 거두거나 사양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외출하다가도 빨래가 널려 있으면 만져보고 꾸덕꾸덕하게 마른 것은 골라서 마루 한켠에 개어놓고 나갔습니다. 아내의 고통과 수고를 그런 식으로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애쓴 것입니다. 아내가 수제비를 뜰 때면 자신이 직접 더 잘 뜬다며 수제비까지 떠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가정살림을 도맡아했던 그였기에 수제비 뜨는 솜씨는 아내인 김여사보다 더욱 뛰어났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힘든 아내를 위해 힘든 일을 분담하려는 의지가 돋보입니다. 가장의 울화로 인한 음주나 폭력으로 너무도 많은 가정이 파괴되는 요즘 현실에서 생각해 볼 점입니다. 

 

그 다음으로 드는 것이 불굴의 의지입니다. 그는 백내장으로 시각장애를 입었습니다. 말년에는 한쪽 눈을 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삶의 지향점을 놓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 그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자신의 목적을 향해 일로 매진한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결코 딴 길을 생각하거나 꿈꾸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박수근에게 가족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를 흔들거나 그에게 다른 길로 유혹하는 손길은 감히 다가올 염두도 못 냈습니다. 온 가족이 박수근의 삶을 동조하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과거 박수근의 삶만큼 고통스럽고 괴로울까요? 밥 굶는 사람이 없고, 옷 못 입는 사람이 없는 시절입니다. 그 어렵던 시절에도 박수근은 자신의 목적과 뜻한 바를 위해 평생을 살다 갔습니다. 그러한 그를 가장으로 모신 박수근의 가족은 비록 가난했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잎사귀 하나 없는 나목을 그는 많이 그렸습니다. 어려운 이 시절 우리는 나목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희망이 없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목은 언젠가 화사하게 새싹을 틔우고 꽃을 활짝 피울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