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노련한 사냥꾼은 누구인가

왕꼬장 2008. 9. 2. 01:54

                                                            노련한 사냥꾼은 누구인가
                                                            

 

 

 

집 마당에서 참새들이 제법 시끄럽게 우짖는다. 어디에서 먹을 것을 찾아내는지 모르지만 새는 참 경쟁력 있는 동물들이다. 하늘을 날기까지 하니 인간이 그런 새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휴일 오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흥미를 줄 게 없을까 궁리하던 내가 말했다.

"너희들 참새 한번 잡아 볼래?"

그러자 대번에 아이들 눈이 반짝였다. 특히 호기심 많고 적극적인 막내가 더더욱 그랬다.

"어떻게요?"

나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새덫 설계도를 그렸다. 사실 설계도랄 것도 없다. 커다란 바구니 하나만 준비하면 되기 때문이다. 바구니 위에 돌멩이를 얹어 땅에 엎어놓은 뒤 한쪽을 작은 나무로 받친다. 그리고 그 바구니 아래에 모이를 뿌려놓고 받쳐 놓은 나무 막대를 끈으로 묶어 길게 늘어뜨린 뒤 숨어서 참새가 오길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모이를 먹기 위해 참새가 그 바구니 밑에 들어갔을 때 기회를 노려 끈을 잡아채면 끝이다.

"와, 이렇게 하면 정말 잡혀요?"

아이들이 내 설계도에 의구심을 품으며 물었다.

"그럼, 아빠도 어린 시절에 잡은 적이 있지."

사실이었다. 참새들이 한참 배고픈 겨울, 동생과 나는 이 덫으로 참새를 잡았다. 의심이 많은 동물인지라 잡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한 건 떡을 버무리는 콩가루. 이 고소한 냄새의 유혹에 참새 여러 마리가 바구니 아래로 목숨을 걸고 진입했다.

숨어서 지켜보다 있는 힘껏 막대를 잡아챈 우리는 이내 마당 가득 울려 퍼지는 참새들의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다. 달려간 동생은 덫에 깔린 참새 두 마리를 손에 들고 왔다. 연약하고 성질 급한 참새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마음 여린 녀석은 그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아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과거의 기억을 뒤로하고 우리 아이들 셋은 모여들어 덫을 만들었다. 뭔가를 잡는다는 흥미진진함에 눈을 반짝였다. 그걸 보면 확실히 낚시나 사냥은 인간들의 영원한 흥미 거리이자 생존본능을 충족시키는 생산행위가 맞다.

그때 맏이가 동생들에게 제안했다.

"먼저 '우'에게 시험해보자."

우는 우리집의 말썽꾸러기 치와와다.

"그게 좋겠어."

아이들은 마당에 덫을 설치한 뒤 바구니 아래에 개가 좋아하는 사료를 놓고 방안에 숨어 기다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설레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설프게 세운 바구니가 바람에 흔들리더니 제풀에 넘어지고 만 것이다. 실망한 아이들이 나가 바구니를 다시 괴었다. 무거운 바구니를 지탱하기에 나무 젓가락은 너무 가늘었던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아이들은 땅을 살짝 파서 나무젓가락을 묻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영악한 애완견이 무슨 눈치를 챘는지 도통 덫 근처에 가질 않았다. 미끼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 아이들은 고기 조각을 놓았다. 그러자 개가 조금 관심을 보였다.

"아빠, 왜 개가 안 들어가요?"

"낯설어서 그렇지. 기다려."

아이들은 옹색하게 문가에 숨어 2-30분을 기다렸다. 덫을 아이들에게 맡긴 나는 서재로 돌아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로소 개가 움직인 것 같았다.

"아깝다!"
"아이고!"

아이들의 탄성에 쫓아가 보니 이번엔 개가 고기를 먹으려고 바구니 밑에 머리를 들이밀어서 끈을 당겼는데 너무 느슨하게 늘어뜨린 탓에 바로 바구니가 쓰러지지 않아 타이밍을 놓쳤단다.

이후 다시 끈도 팽팽하게 당겼지만 한번 바구니 떨어지는 걸 경험해 놀란 개가 근처에 올 리 없었다. 경계심으로 언저리만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아, 지겨워요."

한 시간이 지나자 가장 어린 막내가 먼저 손을 들었다. 곧이어 아이들이 하나 둘 흥미를 잃었다.

"하하, 그런 게 바로 인생이야. 원하는 걸 얻으려면 인내심을 갖고 끝없이 기다려랴 해."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참새같은 야생 동물은 더 경계심이 많아. 애완견도 못 기다리면서 어떻게 참새를 기다려? 지겨운 걸 참아내는 게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경쟁력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디 원시인만 먹이 사냥이 지겨웠겠는가? 오늘날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 모두 삶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참을성과 끈기로 무장해야 하지 않나 말이다. 사실 오늘날 현대인의 삶도 덫을 놀고 새를 잡는 사냥꾼의 삶과 다를 바 없다. 한없이 기다리면서 참고 또 참아야 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먹거리가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노련한 사냥꾼, 그들은 누구인가? 끝없는 인내를 가진 자에 다름 아니다. 먹거리 쟁취는 남다른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이런 덫의 경험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새덫은 벌써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아이들이 tv 앞에서 깔깔대는 휴일 오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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