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린이 독자들에게 = 함께 세상을 바꾸자

왕꼬장 2008. 9. 8. 08:16

                                                       우리 함께 세상을 바꾸자 
                           


장애인 친구들 안녕?
나는 작가 고정욱이야.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면 내가 쓴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을 하나 소개할까? 옛날에 MBC 텔레비전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 선정된 <가방들어주는 아이>야.


아하, 저기 저 친구 고개를 끄덕이는군. 맞아. 그 작품을 내가 썼어. 혹시 안 읽은 아이들을 위해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장애인 친구의 가방을 매일 들어다주는 의무를 갖게 된 석우가 친구의 고통과 아픔을 진심으로 느끼게 된다는 거야. 장애의 설움은 너무나 커서 비장애인 친구까지도 마음이 아프지.

그밖에도 <아주 특별한 형>에서는 뇌성마비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중증 장애인들이 얼마나 이 세상을 꿋꿋이 살아가는가를 보여주었지. 유명한 피아니스트 희아를 다룬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휠체어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그림 그리는 윤석인 수녀님 이야기인 <누워 있는 피카소> 등이 다 내 작품이야.


 

그러면 눈치 빠른 친구들은 지금쯤 짐작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장애를 소재로 하거나 주제로 한 작품만 쓴다는 사실을.
맞아. 나는 그런 작품을 주로 쓴단다. 그러면 또 궁금해지지? 이유가 뭘까 하고…….

 

내가 장애를 다루는 작품만 쓰는 이유를 말해줄게. 그건 바로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이야. 무슨 장애냐고? 지금은 예방주사가 잘 개발되어 없어진 질병 소아마비를 앓은 1급 지체장애인이란다. 그래서 난 내 의지로 단 1미터도 걸어보지 못하고 혼자 서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어. 걷는 것이 일상인 비장애인들은 그 느낌이 어떤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물론 장애인 친구들은 조금 짐작할 수 있겠지.

나는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학교를 다녔고,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어. 1992년에는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오늘날까지 글을 쓰는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단다. 소설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많이 발표했지.

나는 동화를 쓸 때 거의 모든 작품에 장애인을 등장시켜. 주제도 대부분 장애인을 위한 것들이야. 이처럼 장애에 관련된 동화를 쓰게 된 이유는 내가 장애인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세상을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야. 그것은 이 세상을 향해서 끊임없이 싸우고 도전해왔던 내 삶의 작은 결론이기도 해.

 

나의 삶은 그야말로 장애로 인한 고통의 역사였단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의대 입학을 꿈꾸었지만 대학에서 장애인은 받을 수 없다고 해서 거부당했지. 취직을 하려고 해도 장애가 있다고 안 뽑아주었어. 결혼이 하고 싶어도 장애가 있다고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하지만 오해는 마. 나는 지금 세 아이의 아빠니까.)

그러한 세상을 향해 나는 끊임없이 싸웠단다. 하지만 이룬 결과는 여전히 미미해. 그 점은 장애인 선배로서 항상 미안하게 생각해. 아직도 장애인들은 버스를 타고 마음껏 원하는 곳을 갈 수도 없고, 지하철을 이용하기도 힘들지. 앞에서도 말한 취직, 결혼, 교육…….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문제도 해결될 기미를 거의 보이지 않고 있어.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글로써 세상을 바꾸자는 거였어. 어린이들이 장애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장애인을 친구로 받아들이게 하면 그 아이들이 주인되는 미래의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좋은 세상일 거라 여겼지. 그래서 나의 작품들은 속속 태어나기 시작했어.

이번에 출간된 개그맨 윤정수 아저씨의 이야기인 <그래 이제 웃는 거야>(작은씨앗)도 비장애인인 아저씨가 청각 언어 장애인인 엄마와 아빠 밑에서 자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이야기란다. 아저씨는 장애가 없지만 엄마 아빠가 장애인인 때문에 장애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살아온 거지. 그런 아저씨는 우리 장애인 친구들에게 위안이 되는 소중한 사람이야. 사고뭉치에 개구쟁이인 아저씨 이야기가 배꼽을 잡게 하지만 눈물 나도록 슬프기도 해.

요즘 나는 정말 열심히 작품을 쓰고 정말 최선을 다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작품을 쓴단다.

하지만 두려움도 있단다. 아무리 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이 이 세상을 이끌어 가려 해도 그 어린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부모들은 여전히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 백지 상태의 아이들 마음에 편견이나 냉대의 어두운 색을 칠해버리면 어쩔까 걱정 돼.

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보다 개선시키는 일은 나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냐. 이 크고 넓은 사회 전체가 함께 변화,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지. 그러려면 이 편지를 읽는 장애인 친구들도 나를 도와줘야 해. 당당하게 밖에 나가고, 친구를 사귀고, 열심히 공부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야. 그럼으로써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야 해.

'아, 장애인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야. 열심히 살려고 애써. 저 사람들을 내 친구로 만들어야지.'

많은 장애인 친구들이 노력하고 도와줘서인지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어. 동료 작가들도 하나씩, 둘씩 장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써내고 있지. 서점에 나가봐도 장애인을 다룬 감동적인 작품이 많아. 그러니 나도 힘이 나고 외롭지 않단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작가들이 부지런히 이 세상 편견과 싸워 줄 테니까 말이야.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우리 주위의 작은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고 굳세게 싸워 나가길 바래.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야. 더 이상 울거나 희망과 용기를 꺾어선 안돼. 삶의 목표를 갖고 매일을 기쁘게 살아가야 해. 왜냐구? 나의 삶은 최고로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야. 장애가 있건 없건.

사랑하는 장애인 친구들. 이제 우리는 헤어질 시간이야. 하지만 너무 섭섭해하지는 마. 내 책을 펼치면 언제든 거기에서 우리는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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