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기통과 문방

왕꼬장 2008. 10. 19. 19:51

                                  기통과 문방


1970년대, 우리나라가 한참 잘 살려고 노력하던 때의 일입니다.
창조국민학교 교문이 닫히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다 등교했기 때문입니다. 철문을 닫는 수위 아저씨 눈에 꼬마 하나가 뛰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헐레벌떡 달려온 소년은 교문 사이를 통과해서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헐레벌떡 달려갔습니다.
“어허, 저 녀석 또 늦었어.”

수위 아저씨가 혀를 차는 아이 민철이는 바로 학교 코 앞에 있는 우리 문방구에 살고 있지만 늘 늦잠을 자고 매일 이렇게 지각을 합니다.
복도를 뛰어 교실로 들어가니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려다가 민철이를 보았습니다.
“민철이 또 지각이야?”
“죄송합니다.”

땀을 닦으며 민철이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 형석이는 말없이 민철이를 바라보고는 교과서를 폅니다.
형석이는 일산에서 기차로 통학하는 아이입니다. 중학교를 가려면 국민학교부터 서울에 있는 좋은 학교를 가야 한다고 농사 짓는 아버지 어머니가 기차를 태워서 서울의 학교로 보냈습니다. 물론 혼자 오는 것은 아니고, 중학교 다니는 형과, 고등학교 다니는 누나와 함께 기차통학을 하는 거였습니다.

신촌 역에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오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기차시간을 맞추다보면 항상 민철이와 다르게 형석이는 일등으로 학교에 옵니다. 아침 7시 반이면 학교에 도착해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형석이의 별명은 기통입니다. 기차를 타고 통학한다는 뜻에서 생긴 별명입니다.
반면에 짝인 민철이는 이렇게 매일 지각을 하니 문방구 집 아들이 지각한다고 별명이 문방이 되었습니다.

“야, 문방. 넌 좀 일찍 오면 안 되냐? 내가 너라면 정말 일찍 오겠다. 집도 가깝고-……”
“야, 기통. 넌 기통이니까 일찍 오지. 내가 뭐 하러 학교 앞에 사는데 일찍 오냐?”
두 아이는 쉬는 시간에 서로 장난으로 시비를 걸었습니다.
“지각이 내 취미잖아. 교문 닫는 순간에 달려 들어오는 기쁨을 네가 아냐? 모르지? 하하하하!”
“아무도 오지 않은 학교를 걸어 들어오는 기쁨을 네가 아냐?”

형석이와 옥신각신은 하지만 민철이는 사실 내일부터 열심히 부지런을 떨어 일찍 와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한번 잠들면 역시 다음날 아침에 또 지각입니다. 부모님들도 별로 신경을 못 씁니다. 아침에 한바탕 아이들이 물건을 산다고 몰려들어와 문방구를 뒤집어 엎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발걸음이 한풀 꺽였을 때에서야 비로소 민철이를 깨우니 민철이는 늘 지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늦어 담임선생님께 야단맞는 민철이를 보고 형석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학교 오면서 민철이를 깨우고 오면 어떨까요?”
“뭐?”
“아침에 제가 깨우면 그때 일어나서 민철이가 밥 먹고 일어나서 세수하고 오면 지각하지 않을 텐데요”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었습니다.
“그래. 그럼 형석이 부탁한다. 내일 한번 해봐.”
“네. 선생님 걱정 마세요.”
그래서 민철이는 형석이와 약속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깨워 주기로…….
“형석아, 고마워.”
“그래. 몇 번만 깨워 주면 너 버릇이 돼서 지각 안 할 거야.”
“알았어.”

집에 돌아가면서 민철이는 내일이 기다려졌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민철이는 밤새 꿈을 꾸다가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민철아, 학교 가야지. 또 늦었겠다. 너.”
“어, 형석이는?”
“형석이가 오긴 왜 와? 애들 다 갔어. 빨리 뛰어.”
민철이는 정신없이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은 뒤 부랴부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문방구를 뛰쳐나왔습니다.
“형석이, 이 자식. 나쁜 녀석이야. 혼내 줄 거야.”

교문이 닫히려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민철이는 헐레벌떡 교실로 달려갔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눈을 부라리자 지레 겁먹고 말했습니다.
“형석이가요, 깨워주기로 했는데요…….”
“형석이 아직 안 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민철이 옆에 있는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자리에 앉은 민철이는 옆자리가 허전해지자 이상했습니다.
“형석이가 왜 안 왔지? 아픈가? 어떻게 된 일이지?”

1교시가 20분 정도 진행됐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교실문이 드르륵 열렸습니다. 거기에는 온몸이 땀으로 젖은 형석이가 서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습니다.

“형석아, 어떻게 된 일이니?”

선생님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서, 선생님. 죄송해요. 기차가요, 오다가 수색에서 고장났어요.”
“그래? 그래서 어떻게 했어?”
“기차에서 내려서 두 시간 동안 걸어왔어요.”

온몸이 땀으로 젖은 형석이는 비틀거리며 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선생님은 그걸보고 눈시울을 붉힐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민철이는 형석이의 땀에 젖은 몸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학교 앞에 살면서 만날 지각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먼 곳에서 오지만 형석이는 오늘 같은 날 학교를 오겠다고 두 시간을 걸어서 오는데 자신은 불과 열 걸음도 안 떨어져 있는 곳에 살면서 만날 지각했다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민철아 미안해. 내가 깨워주지 못했지?”
“아니야, 형석아.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게을렀어. 내일부터는 정말 일찍 일어날 거야.”
“그래, 민철아. 학교 앞에 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네가 몰라서 그래. 난 네가 부러워.”

다음날부터 형석이는 약속대로 민철이를 깨웠고, 민철이는 일주일 정도 형석이가 깨우자 알아서 일찍 일어나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찍 와서 아무도 오지 않은 학교를 걸어 들어오는 기쁨을 알게 된 뒤로 민철이는 더 이상 지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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