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아들이 얻은 것

왕꼬장 2009. 10. 28. 22:53

                              아들이 얻은 것
                                                                     고 정 욱

 

 

오랜만에 차를 달리는 경춘가도는 무척 아름다웠다. 계절출판사 김부장의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인 아들은 싱글벙글이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너무 큰소리로 틀지 마라. 가는 귀 먹는다."

음악매니아인 아들은 잔소리를 듣자 볼륨을 줄이는 시늉을 했다.
김부장은 지금 춘천에 있는 한 회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군에 가려고 휴학한 뒤 집에서 빈둥대는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었다.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는 것도 보여주고, 세상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춘천전자는 호반에 멋진 건물을 지어놓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옥으로 들어가니 시간은 정확하게 열시 십분 전이었다. 사장실의 문을 두드리자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그들을 맞아주었다. 한쪽 벽을 장식한 멋진 오디어 시스템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흘려보내는 가운데 수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한 뒤 김부장은 자리에 앉았다.

"이쪽은 저희 사무실의 인턴사원입니다."
아들을 인턴사원이라고 소개한 뒤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춘천전자가 개발한 인공지능 청소기가 세계적으로 획기적인 거라고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이 물건을 파시려면 거기에 재미있는 스토리가 첨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춘천전자가 개발한 청소기는 사람이 없어도 집안을 청소하고 다니는데 인공지능 센서가 있어서 한번 갔던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에 착안한 김부장은 <똑똑한 청소기>라는 재미나는 만화책을 출간하려는 거였다. 청소기가 다른 가전제품들과 싸워서 결국 이긴다는 조금은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이런 게 먹힐까요?"

이야기를 다 들은 사장이 물었다.

"옛날에 토이 스토리라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그 만화를 보면 집안에 있는 장난감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황당한 스토리였구요. 세계적으로 대박을 쳤습니다. 이 청소기도 인공지능을 쓴다니까 그런 재미난 이야기를 저희가 만들어 출간을 하겠습니다."

"예산은 많이 들지 않을까요?"
"예산은 적정선에서 안배를 하셔야죠. 하지만 여타의 광고비를 생각한다면 그리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부장은 열심히 설득을 했다. 아들은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노회한 사장은 금액이라든가 제작기간 등을 묻더니 내심 좀 비싸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김부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컨텐츠는 창의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격을 매기기 어렵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쉽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치열한 공방전과 설득전이 벌어졌다. 춘천전자에서도 새로운 제안에 구미가 당기는 눈치였지만 비용을 선뜻 투자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았다.

"좋은 아이디어이시긴 한데 내부에서 논의를 좀 해봐야 합니다. 의논해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에 올 때까지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움직이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김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끝났다."

"아빠, 존경스러워요. 일을 성사시키시려고 열심히 설득을 하시던데요. 아빠의 말씀은 논리적이고 조목조목 말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이런 것에 이해가 부족한 사람 같아 보였어요."

"새롭게 제안하는 건 늘 이렇게 어려운 법이야.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아빠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 열심히 하는 자에게 길이 있는 거지."

김부장은 기회는 이때다 싶어 아들에게 인생에 대한 강의를 이어나갔다.
"아빤 오늘 일 잘 안 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지. 불굴의 의지로. 그래서 오늘 너는 뭘 느꼈어?"
"글쎄요, 저는……."

김부장은 아빠를 존경하게 됐다거나 자기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대답이 나오길 은근히 기대했다.

"사장실에 오디오가 좋던데요?"
"뭐? 뭐라구?"

"제가 보기에는 몇 천 만원 하겠던데요? 와우! 나중에 저도 돈벌면 사무실에 그렇게 좋은 오디오 설치해야 되겠어요."

녀석은 말을 마치더니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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