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지름길이 느린 길

왕꼬장 2008. 9. 14. 20:19

              지름길이 느린 길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이었습니다.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에 허둥지둥 섰습니다.
"택시, 택시!"

저 만치서 오던 모범 택시 한 대가 그 소리를 듣고 미끄러지듯 섰습니다.
"아저씨, 저기에 있는 대한빌딩 빨리 가주세요"
"네에, 알겠습니다."

기사 아저씨는 느긋하게 대답한 뒤 미터기를 눌러 출발했습니다.

"제가 좀 급하거든요. 아저씨 서둘러 주세요."
"예. 급하더라도 법규는 지켜야지요."

택시는 모범운전을 하는 아저씨답게 차량의 흐름 속으로 점잖게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대한빌딩을 향해 우회전을 하는 순간, 큰길에 자동차들이 꽉 막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있는 차들에서 붉은 색 브레이크 등이 꽃놀이 온 것처럼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아저씨는 당황했습니다.

"앗, 어떻게 하지? 큰일났네. 이렇게 막혀서야……."
"앞에 무슨 공사가 있는 모양이네요. 이 길이 원래 막히는 길이 아닌데……."

안절부절못하던 아저씨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전구 켜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쪽으로 가면 길 좋은 게 있어요."
"뒷골목이오?"
"네 그 길은 안 막혀요."
"학교가 있잖아요."
"네. 초등학교 앞길, 거기로 가시면 됩니다."
"학교 앞이면 좀 그런데……."

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우회전을 해서 뒷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백여 미터 들어가 좌회전을 하자 거기에는 차 한 대가 일방통행으로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자, 보세요. 차가 없잖아요. 이 길을 몰랐으면 막히는 길에 서 있을 뻔했잖아요."

하지만 택시기사 아저씨는 속도를 내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가는 것을 보던 아저씨는 다시 채근했습니다.

"아저씨, 급하다니까요."
"아, 저걸 보세요. 여기는 스쿨 존입니다."
"스쿨 존이오?"
"예. 학생들이 나오는 길이란 말이죠."
"학생들 하나도 보이지도 않는데요?"
"학생들은 안 보이다가도 보이고, 보이다가도 안 보이는 법입니다. 저것 보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학교 정문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웃고 떠들며 장난치는 아이들이 인도에 가득 넘쳤습니다.
"저러니 이 길로 오게 되면 법정속도를 지켜야 되는 겁니다. 30킬로미터로 가야 되니까 천천히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저씨의 속도계 눈금은 정말 30Km였습니다.

"하, 이것 참, 위반할 수도 없고……."
아저씨도 스쿨 존이라는 말에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아저씨, 눈치껏 살살 좀 가면 되지 않습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애들은 또 키가 작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들어가 있으면 안 보이거든요."

뒷좌석에 앉은 아저씨는 차에서라도 뛰고 싶게 열불이 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차는 방과후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길을 뚫고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학교 정문 앞에서 경고의 표시로 노란색 신호등이 깜박거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이 수요일이어서 수업이 일찍 끝나지요."

기사 아저씨는 모르는 게 없었습니다.
이윽고 택시는 스쿨 존을 거의 다 살살 빠져나왔습니다.

"아저씨, 이제 달리세요. 저기 끝까지만 가면 대한빌딩 뒷골목이에요."

느리게 왔지만 그래도 큰길이 막히는 것보다는 잘 왔다고 생각하며 아저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도 기사아저씨는 여전히 택시를 빨리 몰지 않았습니다.

"아저씨 애들도 없는데요."
"아닙니다. 스쿨 존 부근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지요."

그 순간이었습니다. 골목에서 공 하나가 튀어나와 바로 택시의 본네트를 치고 나갔습니다. 아저씨는 급정거를 했습니다.

"아니 왜 서세요?"

기사 아저씨는 잠깐 기다리며 동태를 살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꼬맹이들이 뛰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공이 나오면 꼭 아이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렇군요."
"제가 손주 보러 미국엘 갔다왔는데, 미국에 차가 많지 않습니까?"
"예."
"일반차 하고 911 구급차가 사고 나면 누구 책임일까요?"
"글쎄요? 소방차가 이기겠죠?"
"맞습니다. 구급차가 이기지요. 911차가 모든 차들에 우선하거든요 영화에서 많이 보셨지요?"
"예."
"그런데 만약에 스쿨버스하고 911 차하고 사고 나면 누가 더 책임이 클까요?"
"글쎄요?"
"스쿨버스가 이깁니다. 아이들을 태웠기 때문이에요.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는 거죠."
"아, 그렇군요"
"저도 그 얘길 듣고 스쿨존을 지날 때면 항상 이렇게 조심을 합니다."

결국 5분 늦게 대한빌딩에 도착했지만 아저씨는 늦은 게 전혀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스쿨 존의 법정 속도가 지켜질수록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저씨의 아이들에게도 안전한 귀가길이 보장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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